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합스부르크 가문 (문단 편집) === 리우펜부르크 백작가와 키부르크 백작가 === 리우펜부르크 분가와 키부르크 분가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다른 분가들과는 달리 합스부르크 가문 초대 [[독일왕]] [[루돌프 1세]]에게서 기원한 분가가 아니라 [[루돌프 1세]]의 친척들에게서 기원한 분가이다. [[루돌프 1세|루돌프 1세(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 4세)]]의 친할아버지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 2세는 아들로 합스부르크 백작 알브레히트 4세와 루돌프 3세를 두었다. 알브레히트 4세가 루돌프 1세의 아버지이므로 루돌프 1세에게는 삼촌이 되는 루돌프 3세는 이후 리우펜부르크 분가의 시조가 되었다. 루돌프 3세는 리우펜부르크 분가를 이을 아들 합스부르크리우펜부르크 백작 고트프리트 1세를 낳았으며, 루돌프 3세의 또 다른 아들인 키부르크 백작 에버하르트 1세는 키부르크 가문의 상속녀 안나와 결혼하여 키부르크 분가[* 부계는 로트링겐 가문이지만 모계인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인식되는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과 비슷한 케이스로, 부계는 합스부르크 가문이지만 모계인 키부르크 가문의 특징이나 정체성이 강하여 [[노이#독일어 neu|새로운 키부르크 가문이라는 의미]]로 노이키부르크라고도 한다.]의 시조가 되었다. 그렇게 [[루돌프 1세]]와는 별개로 분가한 리우펜부르크 분가와 키부르크 분가는 현 [[스위스]] 부근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루돌프 1세]]에게서 기원한 친척만큼의 중요성과 권력은 가지지 못했으며, [[루돌프 1세]]의 아들 [[알브레히트 1세]]의 살해에 가담하는 등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노선을 취하기도 하였다. 리우펜부르크 분가는 [[1408년]]에, 키부르크 분가는 [[1414년]] 혹은 [[1417년]]에 대가 끊겼다. 영지와 작위 대부분은 [[루돌프 1세]]에게서 기원한 친척들에게 넘어갔으며 합스부르크 가문은 [[1918년]] 왕정이 끝나기까지 키부르크 백작을 칭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